사무직으로 여러 회사에서 근무를 했었습니다.
주로 규모가 크지 않은 회사들을 다녔기 때문에 다른 회사의 분위기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경험했던 사무직에는 비슷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일이 많아서 힘든 것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계속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 많았고, 퇴근한 뒤에도 업무에 대한 생각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내 업무가 있어도 다른 일이 먼저일 때
제가 다녔던 회사들은 제 업무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분명히 제가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는데, 그 일을 하던 중에 사장님이나 다른 사람이 다른 일을 부탁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먼저 처리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물론 부탁받은 일이 더 급한 경우도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각자 생각하는 우선순위가 다를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내가 오늘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끝낼 수 있을지부터 걱정하게 됩니다. 하던 일을 중단했다가 다시 돌아오면 어디까지 했는지 확인해야 하고,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다 보면 집중력도 떨어집니다.
특히 작은 회사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맡는 경우가 많다 보니 업무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 사무실의 잡일까지 내 일이 될 때
업무 자체만 힘든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무실 안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잡일이나 환경을 관리하는 일도 자연스럽게 여직원의 몫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다른 직원들도 함께 사용하는 공간인데 누군가는 정리를 해야 하고, 눈에 보이는 일이 생기면 결국 먼저 발견한 사람이 처리하게 됩니다.
저도 다른 직원들처럼 신경도 쓰지 않고, 모르는 척하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을 계속 보고 있기도 불편했습니다. 결국 제가 하고 말았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함께 사용하는 공간인데 특정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맡겨지는 상황이 반복되면 그냥 지나치기보다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 보니 '왜 이런 일까지 나 혼자 해야 하지?'라는 생각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그런 일을 하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도와준다면 마음이 좀 풀릴 텐데 도와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업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누군가는 계속해야 하는 일들이 있고, 그런 일들이 쌓이면 생각보다 피로감이 커집니다.
● 숫자를 다루는 일은 실수에 대한 부담이 있습니다.
저는 사무직 중에서도 경리나 회계 업무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숫자를 많이 다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숫자에 예민해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숫자를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숫자가 많으면 눈으로 보고도 순서를 바꿔 읽을 때가 있어서, 금액이나 숫자를 입력하거나 확인할 때 실수가 없도록 계속 신경을 쓰게 됩니다.
문제는 일을 끝낸 뒤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혹시 실수한 것은 없을까?'
'숫자를 잘못 입력한 것은 아니겠지?'
이런 생각이 문득문득 떠오릅니다.
너무 신경이 쓰이면 이미 처리한 일을 다시 확인하기도 합니다. 저는 원래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라 한 번 확인했다고 해서 '끝났다'라고 생각하기보다 생각하고 또 확인하는 편입니다. 물론 실수를 줄이기 위해 확인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퇴근한 뒤에도 계속 생각이 난다면 일 자체보다 심리적인 부담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 퇴근했다고 일이 끝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서는 거래처별 단체 채팅방에 초대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퇴근한 뒤에도 거래처에서 메시지가 오면 자연스럽게 신경이 쓰였습니다. 휴일에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거래처가 아니더라도 관리자급 직원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저녁 8시나 9시에도 연락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당장 답변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휴대폰에 업무 관련 메시지가 떠 있는 것만으로도 다시 회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직으로 취업하면 일을 하는 동안에도 가끔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퇴사하면 뭘 해볼까?'
'다른 일을 해보는 게 나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 다시 사무직을 찾게 됩니다.
● 그래도 다시 사무직을 찾게 되는 이유
사무직이 싫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가장 오래 해본 일이기도 하고, 익숙한 업무가 많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보다는 다시 사무직을 선택하게 됩니다.
아마 앞으로도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예전에는 사무직이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면, 지금은 어떤 환경에서 일할 때 제가 특히 스트레스를 받는지도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업무의 경계가 너무 모호하지 않은 곳, 퇴근 후에는 업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 그리고 내가 맡은 일을 차분하게 처리할 수 있는 곳.
다음에 새로운 회사를 선택하게 된다면 단순히 '사무직이니까'가 아니라 내가 어떤 환경에서 오래 일할 수 있는지도 함께 생각해보고 싶습니다.